
2026년 현재, 한국의 전통을 지키고 이어가는 ‘마지막 세대’라는 말이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수천 년을 이어온 무형문화재 기술과 장인의 삶이 빠르게 사라지는 이유는 단지 세월의 흐름 때문이 아닙니다. 전통의 가치가 사회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교육되고, 그 기술이 어떻게 확산되는지에 따라 그 명맥이 결정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가치 인식’, ‘전통 교육’, ‘기술 확산’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전통을 잇는 마지막 세대가 처한 현실을 진단합니다.
전통의 가치, 사회는 정말 알고 있을까?
전통 기술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그것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입니다. 2026년 현재, 대중은 무형문화재를 국가가 보호해야 할 '과거의 유산' 정도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 기술이 오늘날의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이해는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이러한 인식의 결핍은 곧 기술 전승에 대한 무관심, 장인의 사회적 위상 하락, 후계자 부족 등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통 기술은 단순한 수작업이 아니라 그 안에 한국인의 생활양식, 철학, 미의식, 공동체 정신이 담겨 있는 문화적 총체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효율성과 속도를 중시하며, 깊이 있는 노동과 감각을 기반으로 한 기술을 비경제적, 비효율적인 것으로 치부합니다. 이로 인해 장인의 기술은 '공방 안에 갇힌 예술'이 되어버렸고, 전통 기술을 향유하거나 체험하는 문화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또한 미디어와 대중문화에서도 전통 기술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예능, 드라마, 광고, SNS에서 보여지는 것은 대부분 현대적이고 글로벌한 감각이며, 전통은 종종 ‘옛날 느낌’으로 소비될 뿐입니다. 이는 젊은 세대가 전통을 낯설고 재미없는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전통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사회적 담론이 필요한 때입니다. 단순히 '지켜야 할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삶과 연결된 ‘필요한 가치’로 전통을 재정의해야 합니다. 전통 공예가 지속 가능한 소비, 지역 정체성, 감성 노동 등 현대 사회의 다양한 키워드와 맞닿아 있다는 점을 알리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기술을 살리는 첫걸음입니다. 사회 전반에 걸친 전통 가치에 대한 인식 개선은 정책 이전에 가장 우선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전통 교육의 단절, 기술은 어디서 배울 것인가
무형문화재 기술을 계승하려면 반드시 교육이 뒤따라야 하지만, 2026년 현재 한국의 전통 기술 교육은 심각한 단절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전수 교육은 일부 전수교육관이나 장인의 개인 공방에서만 이루어지고 있으며, 대중교육이나 공교육 체계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기술의 대중적 확산은 물론, 전문 인력 양성에도 큰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초·중등 교육 과정에서는 전통문화 관련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지만, 대부분 이론 중심이거나 단편적인 활동에 그치고 있습니다. 교사 역시 전통 기술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실제 체험이나 심화 교육으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대학 진학이나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에, 학생들과 학부모 모두 전통 기술 교육을 진로와 연결된 선택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직업교육기관이나 기술학교에서도 전통 기술 분야는 소외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비 지원 교육은 디지털 기술, 산업기술, 창업과 관련된 분야에 집중되어 있으며, 전통 공예, 수공예, 공연예술 등의 무형문화재 관련 기술은 커리큘럼조차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로 인해 전통 장인이 되려는 젊은 세대는 정규 교육 시스템 밖에서, 장인 개인에게 의존해 기술을 배워야 하는 구조에 놓이게 됩니다. 이러한 교육의 부재는 전통 기술을 ‘전문 직업’이 아니라 ‘특수한 예외 활동’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장인이 되기 위한 길이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재능과 열정이 있어도 중간에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통 기술이 살아남으려면,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배우고,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앞으로는 공교육과 평생교육, 직업교육 시스템 내에서 전통 기술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 양성과정, 정규화된 교육 콘텐츠, 실습 기반 교육 공간 확보 등이 필요합니다. 전통 기술을 배운다는 것이 더 이상 ‘희귀한 선택’이 되지 않도록, 교육 체계 전반의 개편이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기술의 확산, 대중과 연결되는 방법은?
무형문화재 기술이 계승되기 위해서는 단지 장인과 제자의 1:1 전수에 머무르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과 접점을 만들 수 있는 방식으로 ‘확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2026년 현재, 대부분의 전통 기술은 소수의 전문가만 알고 있으며, 대중과의 연결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이는 곧 사회 전반의 관심 저하, 전통 콘텐츠의 부족, 시장 기반 붕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기술의 접근성입니다. 일반인이 전통 기술을 배우거나 체험할 수 있는 기회는 매우 적습니다. 전수교육관은 주로 전수자 양성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되며, 대중 체험 프로그램은 대부분 이벤트성에 그치고, 지속적인 학습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또한 장인 공방은 지역에 고립되어 있어, 물리적 거리와 정보 부족이 일반인의 접근을 어렵게 만듭니다. 두 번째는 콘텐츠의 부족입니다. 전통 기술을 흥미롭게 전달할 수 있는 콘텐츠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의 플랫폼에서 ‘기술을 쉽게 배우는 영상’, ‘장인의 작업과정 브이로그’, ‘전통 공예품의 현대적 활용 사례’ 등은 매우 드물며, 이는 젊은 세대와의 접점을 끊는 원인이 됩니다. 전통 기술이 콘텐츠화되지 못하면, 결국 문화 소비 구조에서도 배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 번째는 유통과 상품화의 문제입니다. 장인의 기술을 활용한 제품은 대부분 고가이고 한정판이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에게는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최근에는 일부 스타트업이나 브랜드에서 전통 소재를 활용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지만, 시장이 매우 협소하고, 브랜딩과 홍보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기술의 확산 가능성을 더욱 낮추는 요인이 됩니다. 앞으로 기술의 확산을 위해서는 △디지털 콘텐츠 중심의 기술 홍보 △공공기관의 온라인 전통 기술 아카이브 구축 △지역축제와 체험 연계 △온라인 수강 가능한 입문 교육 플랫폼 △장인 협업형 브랜드 사업 등의 다각적인 전략이 필요합니다. 전통 기술은 전문가만의 것이 아니라, 모두가 향유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열린 자산이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전통을 잇는 마지막 세대’가 아닌, ‘새로운 첫 세대’를 만들 수 있는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전통을 잇는 마지막 세대라는 표현이 더 이상 회한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전통을 어떻게 보고, 가르치고, 확산시키느냐가 결정적인 변수입니다. 장인 한 사람의 삶에 기대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회 전체가 전통 기술을 다시 품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