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형문화재 장인은 단순히 기술을 전승하는 기능인을 넘어, 시대를 이어온 문화의 흐름을 몸으로 기억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2026년 현재, 이들의 존재와 역할은 점점 사회적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기술의 급격한 발전, 산업 중심의 정책 구조, 문화소비 방식의 변화는 무형문화재 장인들의 생존 기반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들의 기술이 단절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무형문화재 장인을 둘러싼 제도적 구조, 기술 전수의 실제, 그리고 대중의 관심도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현재 상황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봅니다.
정책은 존재하지만, 장인에게 닿지 않는다
2026년 현재 정부는 다양한 문화재 보호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나, 그 중 상당수는 실질적으로 무형문화재 장인의 삶에 닿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문화재청이 시행 중인 ‘무형문화유산 보호 및 진흥 3개년 계획(2024~2026)’은 무형문화재 보유자의 활동을 지원하고 기술 전승을 돕기 위한 목적이 있지만, 실제로 혜택을 체감하는 장인은 제한적입니다. 첫째, 정책의 중심이 여전히 보유자 지정과 명예 부여에 머물러 있습니다. 보유자로 지정되면 일부 지원금과 활동 기회가 주어지긴 하지만, 기술 전승과 창작 활동에 필요한 실질적 자원은 부족합니다. 장인이 기술을 시장성과 연결하거나 창업으로 확장하려 할 경우, 문화재 정책보다는 일반 창업 정책을 이용해야 하는데, 여기에서도 ‘무형문화재’라는 특수성 때문에 적용이 어렵다는 사례가 많습니다. 둘째, 보조금과 지원 제도는 대상자 선정과 행정절차가 복잡하고, 일부 종목은 지역별 예산 차이로 인해 동일한 자격임에도 혜택이 상이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도 지정 무형문화재의 경우 지역 예산에 의존하므로, 일부 지자체에서는 실질적 지원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셋째, 장인을 위한 정책이 ‘보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전통 기술을 현대적 감각과 접목하거나 산업화하려는 시도는 여전히 제도권 내에서 배제되기 쉽습니다. 2025년부터 시범 운영된 ‘전통기술 창의융합 지원사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예산과 수혜자 수가 적고, 대상 종목이 제한되어 있어 파급력은 크지 않은 실정입니다. 결국 정책은 존재하지만, 그 구조와 실행 방식이 장인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장인을 위한 단기적 지원이 아니라, 전통 기술을 ‘활용 가능한 미래 자산’으로 키울 수 있는 중장기적 생태계 조성입니다. 장인이 문화유산으로서만 존재할 것이 아니라, 창의적 생산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실질적 정책 전환이 시급합니다.
기술 전수, 도제식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무형문화재 기술 전수는 전통적으로 ‘도제식’ 방식에 의존해 왔습니다. 즉, 한 명의 장인이 오랜 시간 동안 제자를 가르치는 형식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장인의 철학과 기술의 깊이를 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현대 사회의 구조와는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큽니다. 2026년 현재, 기술 전수는 전수교육관이나 지정된 교육기관에서 이뤄지긴 하지만, 여전히 개인 중심 교육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수자는 시간과 비용을 개인이 부담하며, 전업으로 삼기 어려운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특히 전수과정 동안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은 젊은 세대의 진입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교육 방식도 표준화되어 있지 않아, 각 장인에 따라 전달 내용, 방식, 수준이 달라집니다. 이는 장인의 개성을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제도권에서 기술 인증이나 객관적 평가 기준을 마련하는 데는 어려움을 줍니다. 결국 ‘누가, 어떻게 배웠는가’에 따라 기술 전수의 질이 달라지는 불균형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최근 몇 년 사이 ‘공동 전수 시스템’이나 ‘기술 협업 커뮤니티’가 일부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온라인 실시간 교육이나 기술 기록 플랫폼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디지털 전통기술 교육 프로젝트’는 장인의 작업을 고화질 영상으로 기록하고, 이를 VR 기반 실습과 연계해 청년층에게 접근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시범사업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전국 단위 확대에는 여전히 기술·예산·정책적 제약이 존재합니다. 무형문화재 기술 전수는 단순히 ‘지식 이전’이 아니라, ‘문화 감각의 공유’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제는 전통적인 도제 방식을 존중하되, 보다 개방적이고 유연한 전수 모델을 병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기술을 끊어내지 않고 시대와 함께 진화시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사회적 관심도 하락, 장인은 잊히는 존재가 되고 있다
무형문화재 장인을 둘러싼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는 바로 ‘관심 부족’입니다. 정책과 제도, 기술 전수 시스템의 부족도 중요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사회의 인식과 관심이 뒷받침되어야 실현 가능합니다. 그러나 2026년 현재, 대중의 관심은 점점 장인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청년 세대는 무형문화재를 과거의 유산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며, 전통기술을 직접 체험하거나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습니다.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짧은 시간 내에 소비되는 콘텐츠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장인의 세계에는 쉽게 접근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거리감은 무형문화재의 가치 자체를 대중적으로 낮게 인식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언론과 미디어에서도 무형문화재 장인에 대한 조명이 적습니다. 간헐적인 다큐멘터리나 특집 방송이 있긴 하지만, 예능, 드라마, 유튜브 등 주요 콘텐츠 플랫폼에서는 전통 장인 콘텐츠의 비중이 매우 낮습니다. 최근 들어 일부 장인들이 직접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거나 SNS를 통해 작품을 소개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제작 역량이나 콘텐츠 기획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효과는 제한적입니다. 또한 교육 현장에서도 무형문화재에 대한 체험 기회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민속공예나 전통예술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2020년대 중반 이후 공교육에서 예산 및 인력 문제로 인해 대부분 축소 또는 폐지되었습니다. 이는 장인에 대한 조기 인식 기회를 잃게 만드는 구조적 원인이 됩니다. 결국 장인이 사회적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있는 현실은, 단순한 문화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의 가치관 위기라 할 수 있습니다. 전통 기술은 단순히 오래된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잃어가는 ‘깊이’, ‘정성’, ‘시간’이라는 가치를 품고 있습니다. 장인을 다시 조명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일상 속 콘텐츠로 풀어낼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기술을 지키는 길이자,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리듬을 되찾는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무형문화재 장인의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화적 책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정책이 형식에 머무르고, 전수가 끊기고, 관심이 식는다면, 수백 년을 이어온 기술과 정신은 한 세대 안에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장인을 위한 구조적 변화, 사회적 환기, 그리고 실질적인 연결이 필요한 시점입니다.